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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 위기의 사과 농부와 하품 사과 한 박스에 담긴 기억

읽는 시간 약 6분

지점 대부계에서 다급하게 채권을 이관하겠다는 연락이 날아왔다. 상황을 살펴보니 채권 금액이 상당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토지와 재산도 어느 정도 있고 영농 활동 자체는 여전히 정상적으로 하고 있는 농가였다. 그래서 지점 직원에게 “아직 충분히 회생 가능성이 있으니 채권을 바로 넘기지 말고 정상화시켜 보라”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못 한다, 안 된다”는 난색뿐이었다. 결국 이대로 두면 부실채권으로 넘어갈 게 뻔해, 본점 채권관리와 마침 감정업무까지 겸임하고 있던 내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하품 사과

본점 감정업무의 권한으로 빚어낸 채권 정상화의 마법

현장으로 직접 나가 담보물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감정가를 매겨보니 원리금에 비해 담보 가치가 조금 부족하기는 했지만, 채권 전체를 보전하는 데는 결정적인 지장이 없다고 냉철하게 판단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확신이 선 나는 본점 담당자의 직위를 활용해 내 손으로 직접 도장을 찍고 담보물 감정서를 작성했다.

그 감정서를 바탕으로 기존의 부실 우려가 있던 채권을 대환(재대출) 처리 형태로 깔끔하게 묶어주며 완전히 정상화의 길을 터주었다. 벼랑 끝에 몰려 있던 그 농민은 이 조치 덕분에 거액의 연체 위기를 말끔히 씻어내고 다시 당당한 정상 채무자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몇 건의 고비를 현명하게 넘기며 결국 완전히 튼튼한 우량 채무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가을날 배달된 하품 사과 한 박스와 잊지 못할 마음

그렇게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해가 바뀌어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무렵이었다. 본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지점을 통해 연락이 왔다. “그 농민분이 고맙다며 본점 마트로 사과를 한 박스 가져다줄 테니 받아 드시라”는 것이었다. 농협 직원을 통해 전달받은 사과 박스를 열어보니, 시장에 내다 팔기 좋은 번지르르한 상품이 아니라 이른바 과수원 구석에서 굴러다니던 ‘하품 중의 하품’이었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투박한 사과들을 보며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지만, 그 사과 한 박스에 담긴 농부의 진심과 쑥스러운 고마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 한쪽이 뭉클해졌다. 비록 외모는 볼품없어도 그 과일을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달콤함은 그 어떤 명품 사과보다 깊고 진했다. 집으로 가져가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며 34년 금융 현장에서 느꼈던 그 어떤 성취감보다 따뜻한 보람을 맛보았다.

🌱 금융 현장 34년의 통찰
채권관리 업무는 단순히 장부에 적힌 숫자를 맞추고 법적 절차를 집행하는 차가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담당자가 조금 더 발품을 팔고 권한을 현명하게 행사해 벼랑 끝에 선 농민의 손을 잡아줄 때, 그들은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고 진심 어린 감동으로 보답합니다. 깍듯하게 건네받았던 하품 사과 한 박스와 5년 만의 유쾌한 재회는, 원칙을 지키되 사람을 향했던 제 34년의 금융 인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가장 아름다운 훈장입니다.

5년 만의 재회와 마트 실랑이 속의 웃음 해프닝

시간이 흘러 그 일이 희미해져 갈 무렵, 내가 본점 마트에서 근무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마트 매장 안에서 직원과 손님이 목소리를 높이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마침내 마주한 그 손님의 얼굴을 살펴보니, 5년 전 내가 직접 감정서를 쓰고 채권을 살려주었던 바로 그 사과 농부였다.

당황하는 직원들을 물리치고 그를 점장실로 모신 뒤, 대수롭지 않은 일로 벌어진 해프닝을 부드럽게 무마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은근슬쩍 웃으며 물었다. “혹시 몇 년 전에 연체 위기에서 농협이 채권 정상화시켜줬던 일 기억하시나요?” 내 말을 들은 그는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아니, 내가 언제 그런 신세를… 잠깐, 그 사람이 바로 자넨가!”라며 깜짝 놀라 무릎을 탁 쳤다.

그러자마자 예전에 줬던 하품 사과 이야기가 생각났는지, “아이고, 그때 그렇게 살려줬는데 내가 너무 몰라봤다”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도움은 금방 잊힌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는 몇 년이 지나서도 고마움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던 모양이다. 팽팽했던 실랑이 현장이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던 그날의 해프닝은, 차가운 숫자를 다루는 금융 현장에서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가장 오래 남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추억이었다.

💡 [작성자 코멘트]
“지점의 냉랭한 거절 속에서 제가 직접 도장을 찍어가며 살려낸 채권 하나가, 수년 뒤 마트 매장 안의 웃음꽃으로 되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겉모습은 볼품없던 하품 사과였지만 그 속에 담긴 순박한 농민의 마음은 제 긴 금융 생활의 가장 큰 위안이었습니다. 원칙과 규정으로 얽힌 채권 회수의 세계에서도, 결국 사람을 향한 믿음과 진정성 있는 소통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해결사임을 잊지 못합니다.”

핵심 요약

  • 대부계에서 포기했던 고액 연체 채권을 본점 감정업무를 활용해 대환 처리 형태로 정상화시켰던 실전 일화를 다뤘습니다.
  • 채권을 살려준 고마움에 농민이 본점 마트로 보내왔던 투박한 ‘하품 사과’ 한 박스에 담긴 따뜻한 추억을 회고했습니다.
  • 5년 뒤 마트에서 실랑이 끝에 고객으로 우연히 재회해 서로를 알아보며 유쾌하게 웃었던 감동적인 해프닝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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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께서는 과거에 누군가에게 베푼 작은 도움이나 예상치 못한 친절이,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뜻밖의 장소에서 따뜻한 인연으로 되돌아왔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yoominseong
봉화농협 정년 퇴직후 블로그 글 쓰기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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